마 포 종 점


정두수 작사 . 박춘석 작곡

노래 은방울 자매 (박애경,김향미)

 

 

'마포종점' 창작 비화

 

. "밤깊은 마포종점 갈곳없는 밤전차, 비에 젖어 너도섰고 갈곳없는 나도섰다…"

. 마포종점 노랫말은 우리나라의 파란만장한 현대사 한부분을 엿볼 수 있다.

. 요즘에도 "세월따라 노래따라"나 "서울야곡"과 같은 라디오 방송들을 아직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로 흘러간 옛 노래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은 시대별·주제별로 옛 노래를 들려준다.

. 사람들이 흘러간 옛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것은 그 노래에 담긴 세월과 시간의 자취 때문이다. 단순히 멜로디로서가 아니라, 그것과 함께했던 한 시대의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이 추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 <마포종점> 가사에는 전차의 마포 종점, 영등포의 불빛, 당인리 발전소, 여의도 비행장까지 구체적으로 네 곳의 서울 지명이 등장한다. 지금은 차를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지나 영등포로 가지만 당시에는 배로 건너다녔고, 서울 도심을 누비던 전차의 종착역은 마포였다.

. <마포종점>이 발표된 1968년은 서울의 전차가 운행을 중단한 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마포종점>은 서울 도심에서 사라진 추억의 교통수단, 전차에 대한 향수를 담은 애틋한 노래인 셈이다. 전차만이 아니다. 2절에 등장한 당시의 여의도는 비행기가 뜨고 지는 비행장이 있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여의도 비행장은 1963년 김포공항이 개장하면서 한동안 군사 비행장으로만 사용되다가 1971년 폐장된 국내 최초의 비행장이었다.

. 한편 지금도 가동 중인 당인리 발전소는 그 시절 마포의 정겹고 애틋한 풍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1930년 문을 열어 열병합 발전소로 서울을 밝히고 데웠던 당인리 발전소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 [마포종점] 노래는 마포구 도화동에 살았던 작가 정두수가 발착을 알리는 구슬픈 종소리와 함께 서민의 애환과 정취를 실어 나르던 전차가 사라진다는 아쉬움과 전차와 더불어 어느 두 연인의 슬픈 사람이야기에 얽힌 아련한 옛 기억을 회상하며 만든 노랫말에 작곡가 박춘석이 가락을 붙여 1967년 봄, 가수 은방울 자매 [박애경,김향미]가 노래를 불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이 노래는 마포종점에서 바라본 한강을 낀 마포의 야경이 잘 나타나 있어 마포 주변의 옛 모습을 회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마포가 여러 사람들에게 더욱더 사랑을 받게된 계기가 되었다.

. 작사가 정두수는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마포종점>의 작사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 작사자 정두수씨에 의하면 당시 지구레코드공사 사무실은 수도극장, 명보극장이 있던 '스카라계곡'에 있었는데도 작고한 박춘석씨, 그리고 이미자, 하춘화, 차중락, 남진, 나훈아, 등 함께한 가수들과 함께 이곳 '마포옥' 설렁탕집을 아지트로 삼았단다.

. 마포는 당시 변두리였는데도 전차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니까 서민들이 많이 살았고. 서민들이 많다보니 옛날에는 설렁탕집이 참 많았다고 한다.

. 새벽 4시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면 밤을 새운 사람들은 일제히 이 설렁탕집으로 몰려나와 얘기꽃을 피웠다고한다.

“당시 마포 종점에 있는 설렁탕집은 예술인 사이에 꽤 유명했다. 어느 날 설렁탕집 주인에게서 마포 종점에 살던 두 연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유학을 가 있던 남편이 과로한 나머지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만 생을 마감하자, 졸지에 남편을 잃은 여인은 늦은 밤이면 신혼 초 사글셋방 시절처럼 마포 종점으로 나갔다. 그곳을 미친 듯 배회하며 기다렸지만 세상을 떠난 남편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결국 여인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 언제인가부터 마포 종점에서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 1966년 여름, 나는 궂은비를 맞으면서 마포 전차 종점에 나가 마지막 전차를 기다리던 애절한 두 연인의 슬픈 사랑을 담은 <마포종점>의 노래시를 썼다.”당시 가난한 대학생 중에는 옥탑방에서 함께 지내는 연인들이 많았고. 남자는 공부 잘해 유학가고, 바걸(여급) 생활로 남자 공부시키며 뒷바라지하던 여자는 연인을 기다리다 처절하게 배신당하는 1960년대 초 젊은 연인들의 사연이 노래 배경이 됐다고 한다.

. 당시 넉넉치 못한 전기사장으로 인근의 당인리 발전소도, 강 건너 영등포와 여의도의 아련히 보이는 불빛의 쓸쓸함과 함께 젊은 연인들의 애끓는 이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마포종점은 삶에 지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지금도 우리의 추억에 남아있게 한다.

< 마포종점의 전차 차고>

 

 

정두수[鄭斗守] <1937. 4. 18 ~ 2016. 8. 13 >

 

<1997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 마포어린이공원에
세워진‘마포종점’ 노래비를 찾은 정두수씨>

 

. 정두수(본명 정두채)는 1937년 4월 18일에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63년 진송남의 '덕수궁 돌담길'로 대중가요 작사가로 데뷔했다. 이후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남진의 '가슴 아프게',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문주란의 '공항의 이별'등 3,500곡을 작사했다.

.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창작에 대한 열의를 놓지 않았으며, 특히 고(故) 박춘석 작곡가와 콤비를 이루며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내셨다.

. 고향 하동을 비롯해 전국 13곳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으며, 2016년 8월 1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투병생활중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박 춘 석 [朴椿石] <1930.5.8 ~ 2010.3.14>

 

 

. 박춘석(본명 박의병)은 1930년 5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서울대학교 음악학과에 입학했으나 이내 중퇴하고 신흥대학교(현 경희대학교) 영문과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 1952년 미8군 무대에서 피아니스트로 첫 데뷔한 그는 1955년 백일희가 부른<황혼의 엘레지>를 작사, 작곡하면서 작곡가로 데뷔하여 "아리랑 목동"(박단마), "비 내리는 호남선"(손인호), "삼팔선의 봄"(최갑석), "바닷가에서"(안다성),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박재란), "가슴 아프게"(남진)"물레방아 도는데"(나훈아)를 포함한 2700여개 작품을 작곡하였다. 특히 가수 이미자의 노래를 많이 작곡했으며, "기러기 아빠"와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를 작곡한 작곡가로 유명하다.

. 그는 이후 국내 최고의 작곡가로 발돋움하였고, 일본에서도 유명해져 일본의 국민가수 미소라 히바리에게 곡을 취입해 주기도 하였다.

. 1994년 제1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1995년 옥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고, 2010년 3월 16일 국내 대중가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199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작곡 활동을 잠정 중단했고, 투병생활중 2010년 3월 14일 자택에서 8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 작곡가 박춘석, 가수 남진, 작사가 정두수 >

 

마 포 종 점

작사 유호 / 작곡 박시춘

노래 은방울 자매

 


 

은방울자매의 지구레코드 전속 기념 음반

 

. 1968년 발매된 이 음반은 은방울자매의 앨범이 아니고 여러가수의 곡을 수록한 신보 컴필레이션 음반(Compilation Album )이다. 커버에는 벚꽃이 화사하게 핀 봄날에 찍은 은방울자매 사진을 싣고, 이들의 대표곡 <마포종점>을 타이틀곡으로 삼았다.

 

<1954년 결성되었던 은방울자매 박애경·김향미>

 

. 은방울자매는 본래 고(故) 박애경씨와 김향미씨가 1954년경 처음 선을 보인 여성 보컬팀이었는데 "삼천포 아가씨", "무정한 그 사람" "쌍고동 우는 항구" 등 힛트곡을 발표 하였으며, 그후 1989년경 김향미씨의 이민으로 박애경씨와 오숙남씨가 새로운 은방울자매로 활동하다가 안타깝게도 2005년 박애경씨가 향년 67세로 작고하여 더 이상 이들의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

하나둘씩 불을 끄고 깊어 가는 마포종점

여의도 비행장에 불빛만 쓸쓸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하면 무엇하나

궂은비 나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노래속에 나오는 지명의 어제와 오늘

 

마포종점의 밤전차 :

 

 

 

 

. 우리나라에서 전차가 처음 운행하게 된 것은 1899년 5월 4일 서울 동대문에서 경희궁을 거쳐 흥화문까지 개통한 것을 시작으로 동대문에서 서대문간을 운행하였으나 그후 청량리에서 마포까지 연장되었고, 1968년 11월 30일 전면 운행을 정지하기까지 서민의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 그때 마포종점은 지금의 마포동 140번지 불교방송국이 있는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마포종점에서 본 영등포 불빛 :

 

<마포나루에서 많은사람들이 강을 건너기 위해 승선하고 있다>

 

<이렇게 여의도나 밤섬으로 건너다녔다>

 

<이곳이 마포대로 애오개(아현동)부근입니다.
멀리 한강이 보이지요(마포종점)>
>

 

<이곳이 공덕동로타리 입니다. 믿어지세요?
지금은 철길이 지하화하고 지상은 공원화 하였다 >

 

<지금의 공덕동 로타리, 도로 좌측 까만 건물 바로 뒤가
철길이 있던 자리입니다>

 

< 옛 마포종점부근에서 다시본 여의도 비행장과 영등포의 불빛입니다
이렇게 흐르는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 시켜 버리네요>

 

당인리 발전소 :

 

<밤섬 폭파전 당인리발전소, 사진 아래 밤섬을 폭파하여
여의도 윤중제(제방)를 쌓았다. 현재 서강대교가 놓였지요>

 

<한국최초의 화력발전소인 당인리 발전소 전경입니다>

 

. 일제 치하인 1930년에 서울 외곽이었던 당인리에서 화력발전으로 전기 생산을 시작하며 서울특별시 발전의 동력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국내 최초의 화력발전소이자 서울 유일의 발전소인 당인리발전소에도 2019년이면 도서관ㆍ박물관ㆍ공연장ㆍ전망대 등 복합문화시설이 들어선다. 대신 이 자리엔 '서울복합화력발전소'라는 이름으로 새 발전소가 세워진다. 화력발전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 지하는 발전설비로, 지상은 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개방한다고한다.

 

여의도 비행장 :

 

<촬영위치는 현재 지하철 5호선, 1호선이 만나는 신길역 부근으로 추정>

 

< 앞에 보이는 다리가 양화대교입니다 >

 

 

.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지만 여의도는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비행장으로 1958년 김포로 이전하기 까지 국제공항으로 사용되었다.

. 서울 도심 한복판으로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니 정말 재미있는 풍경처럼 보였었지요.

. 마포종점 노래가 발표될 당시(1968년)에도 미공군 기지로 사용되며 군용기들의 이착륙이 활발하였지만 여의도 윤중제 개발과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