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의 '만종'에 얽힌 슬픈이야기

 

<이 그림은 프랑스 바르비종파(Barbizon)의 한사람인

장프랑수아 밀레(1814-1875)가 그린 '만종'이다.>

 

.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보았을 이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벽에 많이 걸린 그림중의 하나라고 한다.

 

. 언젠가부터 이 그림이 주는 느낌이 좋아 간직하고 있다가 <만종>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또다른 더욱 엄숙함과 숙연함을 느끼게 된다.

 

. '만종'이란 저녁의 종<소리>으로 우리나라에서만 만종으로 번역 되어진다고 한다.

 

. 원래제목은 <삼종기도 The Angelus>이며 이를 알리는 종소리이다. 이는 당시 유럽에서 아침, 정오, 저녁의 종소리에 맞추어 일일삼성을 실천하던 종교적인 문화속에 살았던 시기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 밀레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만종>은 저녁 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한 가난한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 캐다가 만 감자가 바닥에 흩어져 있고 저 멀리 마을 교회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밭일을 하던 남편은 모자를 벗고 여인은 두 손을 모아 삼종기도를 드린다.

 

. 들녘의 지평선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들 부부의 모습은 마치 대지와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며, 대지를 물들이는 저녁 노을을 뒤로한 채 힘들고 고단한 하루였지만 그래도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리는 부부의 경건한 모습은 멀리 보이는 교회당이 정지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 그야말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불러 일으키며 지금까지도 전 세계인 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 하지만 우리눈에 보여지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이 그림, 프랑스의 자랑인 장 프랑수아 밀레가 그린 명화 '만종(晩鍾) 에는 가슴아픈 사연의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 지금으로 부터 100년전,

 

.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 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던 '만종'은 값을 매긴다는게 불가능한 보물이다.

 

. 그러나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1860년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한 화가에 불과했다.

 

.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지원한다.

 

. 이 1,000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만종'이다.

 

. 이렇게 탄생한 만종은 100년 만에 80만 프랑 값어치를 얻었고, 그로부터 또 10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 된 것이다.

 

. 1,000프랑을 지원한 것이 국부(國富) 를 일구어낸 것이다.

 

. 루브르에 돌아오기 전 '만종'은 미국 아메리카 미술협회에 팔렸다. 프랑스 측은 국회와 행정부는 물론 모금활동까지 벌여가며,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

 

. 그러나 부자나라 미국을 당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가 자존심이 상한 채 주저앉아 있을 무렵, 백화점 재벌 알프레드 쇼사르가 미국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만종' 을 다시 사들인 것 이다.

 

.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지 않고 루브르에 기증했다. 예술의 가치를 알아본 쇼사르 가 없었다면, 이삭줍기' 와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 중 하나인 '만종'은 지금쯤 미국 어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작품이다.

 

. 자, 이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 그림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씨와 밭일 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 있었다.

 

.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 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었다.

 

. 그 시대,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은 것이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바로 '만종' 이다.

 

. 그런데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 이 그림을 보게 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 했다고 한다.

 

.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의 눈과는 달리 또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 그가 바로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판화가, 영화제작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이다.

 

. 그는 상상력이 뛰어나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진 사람으로 유명하다.

 

. 밀레의 '만종'을 보면, 누구라도 신성한 노동 후의 고요한 정적과 평화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이 그림을 보고 '달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맛 보았다. 그 불안감이 얼마나 집요하게 그의 뇌리에 달라 붙었는지 '달리'는 오랫동안 그 까닭을 알아내려 했고, 그에 관한 책을 쓰기까지 했다고 한다.

 

. 그의 일화를 보면,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루브르박물관' 에서 <만종>을 처음 본 순간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바로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 때문 이었다. 그 뒤로도 달리는 <만종>을 볼 때마다 늘 불안감에 시달렸다.

 

. 그는 엉뚱하게도 <만종>에서 두 부부 사이에 놓여진 감자 자루가 마치 관처럼 느껴진다고 주장했다. 달리는 <만종>을 변형시켜 그림을 그렸고, <밀레의 만종의 비극적 신화>라는 책을 쓰며 <만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 하지만 워낙 괴짜에 미치광이 소리를 듣기도 했던 달리의 이런 주장을 당시 사람들은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달리'의 직관은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감자 자루를 어린아이의 관으로 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을 느꼈던 것 이다.

 

. 그런데 수십 년 후, 현대 과학으로 인해 이러한 달리의 투시력이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정확한 관찰이었음이 밝혀졌다.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종>을 적외선 투사 작업을 통해 그 감자 바구니가 초벌 그림에서는 죽은 어린아이의 관 이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 또한 밀레가 초상화를 그려주기로 했던 가난한 부부의 갓난 아기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숨지자 죽은 아기를 묻기 전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그 가슴 아픈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가 주위의 권유로 지금처럼 수정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 즉 밀레의 그림에 본래 담겨있던 비극성을 달리가 직관적으로 알아낸 것이다. 이제 밀레의 '만종'을 보면 평화로운 모습뒤에 가려진 슬픔도 함께 보일것 같다.

 

. 세상에는 이처럼 눈에 보이는것만이 전부가 아닌 일들이 참으로 많다. 어떤 일에서, 누군가의 마음에서... 진정한 뒷모습까지 알기 전까지는 누구도 함부로 판단할수 없음을...

 

. 프랑스 화가 하면 떠오른 사람은 '밀레' 다. 그 가 남긴 희대의 명작 중 만종(晩鐘), 씨 뿌리는 사람, 이삭줍기, 등 명작이 바르비종 이마을에서 탄생했다 한다.

 

< 이삭줍기 >

 

< 바르비종마을 입구에 세워진 안내 판 >


<바르비종 안길 양편은 옛날 그대로 보존 되고 있다한다
바르비종은 관광지화 되어 고급 휴양지로 변모 되고 명작
진품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 관리하고 있다한다.>

 

<밀레가 사용했던 화방 , 지금은 유물 전시장 활용>

 

<밀레화방 입구 이 전시실에는 여러가지 유품이 전시되고 있다>

 

<The Evening Ball / Sheila Ry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