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사랑의 노래 !"


동심초 (同心草)

 

薛濤 (설도)

김 억 번안

김성태

소프라노 송광선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 아득한데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 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가~♪♬.

 

. 절절한 그리움이 녹아든 애절하면서도 슬픈 이 노랫말을 누가 지었을까~?

. 흔히 신사임당의 시로 잘못 알려져 있는 가곡 '동심초(同心草)'의 원작자는 당나라 명기(名妓)이며 여류시인이었던 설도(薛濤, 770 -832)의 詩 춘망사(春望詞 ;봄날의 바램) 四首 중 第三首가 원작이다.

. 이 것을 김소월의 스승인 안서 김억(岸署 金億, 1893.11. 30- 6.25때 납북)이 번역하여 1934년 발간한 번역시 선집 <망우초.忘憂草>에 <동심초. 同心草>라는 제목으로 실었던 것을 1946년 김성태가 어느날 잠못이루다 우연히 머리맡에 있던 이 시집에서 발견하고 마음에 들어 작곡했다고 알려져있다.

. 해방 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곤 하던 이 노래가 1959년 김진규, 최은희, 엄앵란, 김석훈이 주연하고 신상옥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동심초>와 라디오 드라마에 권혜경의 목소리로 주제곡으로 삽입되어 널리 유행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지금까지 많은 성악가들의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 가슴에 애틋하고 절절한 그리움이 밀려 와 가끔은 뜻 모를 슬픔에 젖기도 하는 안타까운 사랑의 노래...

. 남자에 채인 가련한 늙은 여자의 비탄이든, 아니면 흘러가는 사랑에 대한 쓸쓸한 정회이든, 설도의 이 시는 가슴이 쓰리도록 아름답다.

. 활짝 핀 가지, 이제 곧 시들고 말 자신의 몸을 거울에 비쳐보며 울었었을 1200년 전의 이 여인을 생각하노라면, 사랑이란 한점 터럭도 늙지 않는 영원불멸의 꿈이 아닌가 싶다.

 

 

. 춘망사(봄날의 바램)는 4수로 된 5언절구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春 望 詞 (춘망사) 봄날의 바램 >

. ( 설 도 )

( 一首 )

花開不同賞 (화개불동상) 꽃피어도 함께 즐길이 없고
花落不同悲
(화락불동비) 꽃 져도 함께슬퍼할 이 없네
欲問相思處
(욕문상사처) 묻노니, 그대는 어디계신고.
花開花落時
(화개화락시) 꽃 피고 꽃 질때에.

 

( 二首 ) . . . . . . . . . . .(괄호안은 풀어놓은 설명문)

攬結草同心 (람결초동심) 풀을 따서 한 마음으로 맺어
. . . . . . . . . . . . . . . .(사랑의 편지 써서는 곱게 접어)

將以遺知音 (장이유지음) 지음의 님에게 보내려 하네
. . . . . . . . . . . . . . . .(내 맘 아실 이에게 보내려 하네)

春愁正斷絶 (춘수정단절) 봄 시름 그렇게 끊어 버렸건만,
. . . . . . . . . . . . . . . (편지 쓰는 동안에는 행복했건만)

春鳥復哀吟 (춘조복애음) 봄 새가 다시 슬피우네
. . . . . . . . . . . . . . . (쓴 편지 부칠 길이 없어 슬퍼지네)

 

( 三首 ) . . . . . . . . . .(3째줄은 우리나라 동심초 가사)

風花日將老 (풍화일장로) 꽃은 바람에 시들어가고
. . . . . . . . . . . . . . . (그리워 하다가 세월만 흘러가는데)
. . . . . . . . . . . . . . .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佳期猶渺渺 (기기유묘묘) 만날 날은 아득히 멀어져가네
. . . . . . . . . . . . . . .(만나 볼 기약은 아득하기만 하네)
. . . . . . . . . . . . . .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不結同心人 (불결동심인)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 . . . . . . . . . . . . . .(한 마음이건만 맺지 못할 사람인데)
. . . . . . . . . . . . . . .무어라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공결동심초) 헛되이 풀잎만 맺었는고.
. . . . . . . . . . . . . . .(부질없이 편지만 쓰면 무엇하나)
. . . . . . . . . . . . . .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 四首 )

那堪花滿枝 (나감화만지) 어찌 견디리 꽃 가득 핀나뭇가지,
煩作兩相思 (번작양상사) 괴로워라 사모하는 마음이여
玉箸垂朝鏡 (옥저수조경) 눈물이주르르 아침 거울에 떨어지네,
春風知不知 (춘풍지불지) 봄바람은 아는지모르는지.

. 라고 해서 제1수에서는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써서 상사(相思)의 정을 표현했고 제2수는 마음과 마음이 합쳐지는 것을 바라는 아름다운 소원을, 제3수에서는 진정한 연인을 만나지 못해 비통해 하는 마음이 넘쳐흐르고 있다. 가곡 '동심초'의 가사는 바로 이 제3수를 우리나라의 말의 맛을 살려 다시 쓴 것이다.

. 그런데 동심초는 무엇일까?

. 노랫말을 보면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로 시작하고 있어 "아! 동심초 꽃잎이 바람에 지는구나"하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동심초는 무슨 풀이름이 아니라 바로 연서(戀書), 곧 러브레터를 의미한다.

 

           

. . . <동심결(同心結) 매듭> . . . . . <동심결 모양의 편지 '동심초'>

                                                                             

. 그런데 왜 '풀 초(草)'가 들어가는가?
종이는 풀로 만드는 것이며 러브레터 접는 방식이 바로 돗자리 짜는 풀의 매듭방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란다.

. 또한 여기에서 不結同心人도 김억의 번역처럼 마음과 마음을 맺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음이건만 맺지 못할 사람' 이 바른 번역이라고 한다. 바로 윗 구절에 이미 "내 마음 아시는 분께 보내려 하네" 가 나오기 때문이란다.

. 따라서 空結同心草도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가 아니라 "헛되이 편지만 접었다가 폈다 하네"가 바른 뜻이라고 한다.

. 그래서 전체의 바른 번역은 ‘한 마음이지만 맺어지지 못할 사람이라 그걸 알면서도 헛되이 연애편지만 썼다가 찢었다가 하네 (혹은 접었다 폈다하네)’가 된다는 설명이다.

.부치지도 못할 편지 써놓고는 하염없이 접었다 펴고 폈다 접고 하는 여인의 애타는 현실을 그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설도가 만든 편지지 설도전>

 

. 앞에서 든 동심결, 동심초에 대한 설명이 러브레터라는 설명이 더 맞을 수 있는 것은, 중국에 설도전(薛濤箋)이라고 하는 편지지가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 설도는 만년에 성도(成都)의 완화계 근처에 은거하였는데 이 근처는 양질의 종이가 생산되는 곳이어서 설도는 심홍색 종이를 만들게 하여 그것을 이용하여 촉의 명사들과 시를 증답(贈答)하였다고 하며 그것이 풍류인들 사이에 평판이 높아, 이런 식의 종이를 '설도전(薛濤箋)' 또는 '완화전(浣花箋)' 이라 하여 크게 유행하였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동심초의 바른 번역은 '사랑의 편지' 혹은 현대식으로 러브레터가 맞는 것 같다.

 

< 중국 장가계의 동심쇄 >

 



<중국 장가계의 동심쇄>




<서울 남산타워의 동심쇄>


.
한편 중국에서 연인들이 사랑의 굳건한 결합을 비는 뜻으로 산속에 걸어둔 쇠사슬에 자물쇠를 채워 두는 것을 동심쇄라고 하고 여기서 춘망사 시귀에 나오는 동심인과 동심초가 서로 같은뜻 이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으로 자물쇠는 '마음'보다는 '물건'을 지키기 위해 그것을 단단히 잠궈 두는 것으로 애타는 사랑을 묶어주는 동심초와는 전혀 의미가 다른 것이다.

 

인물 설도(薛濤)에 관하여

 

 

. 우리나라에 여류시인으로서 "황진이"가 있다면 중국에는 당나라때에 기녀로서 여류시인 설도(薛濤 770 - 832)가 있다. 설도의 자는 홍도(洪度) 어렸을적 부터 시, 문에 재능이 뛰어났었다. 설도는 실연한 사연으로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비분상심의 감정을 붓끝에 모아내어 시를 썼다.

. 그녀의 생몰 연도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원래는 장안(長安) 출생이었지만, 사천성 성도(成都)의 자사(刺史)로 부임한 부친을 따라 성도에 와서 살게 되었는데, 부친은 반란을 진압하는 도중에 전사하게 되고, 곧 이어 모친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아무데도 의지할 곳이 없게 되고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그녀는 결국 악기(樂妓-기예(技藝)는 팔아도 몸은 팔지 않는 고급 기녀)가 되었다.

 

<설도기념관. 중국 四川省 成都 望江公園 내>

 

.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당대의 보기 드문 재녀(才女)였는데, 음률과 시, 서예에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용모 또한 매우 뛰어났다.

. 그 당시 사천절도사 韋皐(위고)라는 사람은 그녀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그녀를 자신의 교서랑(校書郞)이라는 직에 임명하려 하였는데, 여자에게 일찍이 그런 예가 없다며 반대하는 부하들 때문에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대신 妓生(기생)을 校書(교서)라고 우아한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 그 후에도 그녀의 재능을 흠모한 일류 문인들과의 교류가 많았는데, 그 중 유명한 사람들은 백거이(白居易), 원진(元鎭), 유우석(劉禹錫), 두목(杜牧) 등이라고 전해온다.

. 인생의 幸不幸(행불행)은 사소한 계기에 달려 있다. 만일 薛濤(설도)가 젊은 날에 韋皐(위고)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무리 詩才(시재)가 있어도 시를 지을 수 있는 시골의 한 기생으로 일생을 끝냈을 것이다.

. 薛濤(설도)는 이러한 위고의 총애로 18세에서 38세 까지의 젊은 나이를,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수 있게되었다.

. 그러면 그 이후의 薛濤(설도)는 어떻게 살았을까.

. 그녀는 머리도 몹시 영리하여 설도전(薛濤箋)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종이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당대의 사람들은 백지(白紙)에 시를 써서 사람을 전송하는 것을 불길하다고 여겨 색깔있는 시전(詩箋-시 한 수나 간단한 사연을 쓰는 폭이 좁은 종이)이 성행했는데 설도는 완화계의 자신의 집 근처의 종이 공장들을 늘 살펴보고 연구하고는, 꽃물을 넣은 붉은 색의 아름다운 색종이를 만들어 자신의 시를 적어 사람들에게 보내곤 하였는데, 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이 몹시 청신하면서도 아름다워 설도전이라고 이름짓고 다투어 수장하려고 하여 몹시 귀하게 되었다. 그 후에는 황실에서도 사들이는 진품(珍品)이 되었다고 한다.

. 이것은 그녀의 짝인 韋皐(위고)를 잃은 뒤, 생계를 유지하게 위해서 부득이 시작한 일인지도 모른다.

 



<설도 편지 설도전 (薛濤箋)>

 

. 그 이후, 薛濤(설도) 앞에 또 하나의 인물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宮中(궁중)에서 후대 받는 젊은 시인 元稹(원진) 이었다.

. 元稹(원진)은 설도의 詩才(시재)를 좋아해서 31세인 그가 41세인 薛濤(설도)를 그의 任地(임지)로 불러 풍류를 즐겼고 문학사상 불굴의 명작을 서로 지어서 남겼다.

. 특히 원진과의 정분은 각별했다고 한다. 원진은 장래가 촉망되는 당대의 시인으로서 사천감찰어사로서 성도에 오게 되었는데, 설도는 나이가 자신보다 10살이나 연하인 원진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아내가 있었던 원진(元鎭)은 설도와 며칠을 함께 지낸 후, 배를 타고 떠난 후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 그 후 설도는 평생동안 독신으로 지냈다고 한다.

 



 <설도가 원진을 향해 무언가를 써 보내는 듯
보이는 그림. 설도 기념관 내부 벽면에 그려져 있다>

 

. 좀 더 상세히 이야기하자면, 원진은 원래, 부친을 일찍 여윈 명문가의 미녀 최앵앵(崔鶯鶯)과 혼약을 정했으나 배신을 한 바가 있었다고 한다. 원진은 결국 재상의 딸과 결혼하여 출세한 인물인데 그러고도 설도를 만나 장래를 약속했다.

. 설도는 원진에 대한 그런 좋지 못한 소문을 전해 듣고는 결국 그를 단념하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 太和(태화) 5년(832) 64세의 나이로 그 생의 막을 내렸다. 그런데 깊은 인연은 같은 해 元稹(원진)도 또한 황천길을 갔던 것이다.

. 薛濤(설도)의 시를 모았다는 錦江集(금강집)에는 500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明나라 초에 이미 亡佚(망일)하고 현존하는 것은 겨우 90여수 밖에 없다고 한다.

 



<설도가 종이를 만들 때 길어 사용하였던 우물 (薛濤井)>


.
청(淸)대에 이르러 설도의 슬픈 사랑과 넋을 기리기 위해 그녀가 살던 곳에 망강루(望江樓)라는 누각을 세웠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했던 대나무를 심었다.

. 지금도 성도의 망강공원(望江公園)에 가면, 그녀가 설도전을 만들 때 물을 길렀다는 설도정(薛濤井), 설도전을 만든 현장인 완전정(浣箋亭), 그 다락에 기대어 시를 짓고 설도전에 옮겼다는 강변의 음시루(吟詩樓) 초석이 있으며 그녀의 시(詩)에 자주 나오는 대나무 1백40여 종이 숲을 이루고 있다.

 



<설도의 조각상과 그녀가 좋아했던 대나무로 장식하였다>

 

<설도와 원진의 편지소개>

. 설도는 나이 40에 10년 연하의 유부남인 원진을 사랑했고, 원진은 많은 여인과 염문을 벌인 바람둥이였지만 시와 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하였다.

. 설도가 보낸 편지에 그가 설도에게 보낸 답장이다.

 



<원진이 설도에게 보낸 답장>

 

. 시에 나오는 탁문군은 과부가 되어 집에 머무르다, 사마상여 라는 사람에게 한 눈에 반해 남자를 따라 집을 뛰쳐나간 당찬 여인으로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도 여인이다.

 

<鴛鴦草 (원앙초) / 薛濤 (설도)>

綠英滿香砌, 兩兩鴛鴦小
但娛春日長, 不管秋風早


싱그런 꽃봉오리 향기로운 섬돌에 가득
둘씩 둘씩 어울린 어린 원앙이라.
오직 긴 봄을 즐거워 할 뿐이니
가을 바람이야 무에 걱정할 것 있으랴

寄贈薛濤 (설도에게) / 元鎭 (원진)

錦江滑膩蛾眉秀, 幻出文君與薛濤
言語巧偸鸚鵡舌, 文章分得鳳皇毛
紛紛辭客多停筆, 個個公卿欲夢刀
別後相思隔煙水, 菖蒲花發五雲高


금강의 매끄러움과 아미산의 빼어남이
변하여 탁문군과 설도가 되었구나.
말씨는 앵무새의 혀와 같고
문장은 봉황의 깃털같이 화려하네
시인들 부끄러워 붓을 멈춘 이 많고
공경대부들 꿈속에서라도 그대와
같은 시를 쓰고 싶어하네
헤어져 서로 그리운데 아득한 강 저편이라
창포 꽃 피고 오색 구름 높겠지.

柳絮 (버들강아지)/ 薛濤 (설도)

二月楊花輕復微, 春風搖蕩惹人衣.
他家本是無情物, 一向南飛又北飛.
 

이월의 버들강아지는 가볍고도 작고
봄 바람에 하늘거리면서 옷깃을 스치네
버들강아지야 무정한 꽃 잎이지만
남쪽으로 날리고 또 북쪽으로 날리네


남으로 북으로 날리는 것은 사랑하는 원진이 다른 여인들과 벌이는 사랑놀이를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람피고 다니는 것을 한탄한 것이다.

. 설도는 40세나 되어서야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나 이미 그것은 시들어진 꽃이였고, 그 뒤 원진을 만났으나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동심인(同心人)'이 되지 못했다. 설도는 비록 원진과 함께 살 수는 없었지만 죽을 때까지 일편단심(一片丹心) 그를 사랑했다고 한다.

 

<설도를 사랑한 원진의 시 離思 五首 其四>

曾經滄海難為水, 除卻巫山不是雲
증경창해난위수, 제각무산불시운

取次花叢懶回顧, 半緣修道半緣君
취차화총라회고, 반연수도반연군

창해를 보고나선 세상의 강이 대수롭지 않고,
무산을 보고나면 구름이라 할 것이 없네.
아름다운 꽃을 봐도 즐겁지 않는 것은
반은 수도 때문이고 반은
내가 님을 그리기 때문이라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는 무엇을 보아도 즐겁지 않고, 또 무엇을 보아도 본 것 같지 않다는 사랑의 위대함을 노래한 시다.

 

<홍길동의 저자 허균(許均)
설도를 기리는
시 한수를 남겼다>

燈暗芙蓉帳
香殘翡翠裙
明年小挑發
誰過薛濤墳

부용꽃 휘장에 불빛이 희미한데
비취색 치마엔 향기 아직 남아 있어라
명년에도 복사꽃 활짝 피면
설도의 무덤을 그 누가 찿을건가

 

동심초 노래듣기 ♬ ♪

. 그녀의 보석같은 시(詩) 언어(言語)가 일 천 년이 흐른 지금, 현대음악과 만나 이토록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며 영혼을 울리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여기 소프라노 송광선의 열창으로 들어본다

 


 


동 심 초


김억
번안 / 김성태

소프라노 송광선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은 덧없어
만날 날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