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일 독립운동의 노래 "


영문(營門) 밖의 길

(새찬송가 158장 '서쪽하는 붉은노을')

 

작 곡 : 이바노비치

작사 : 주기철 목사

노래 : 미상

 

 

(주기철 목사와 4남 주광조 장로 이야기)

 

. 부르면 절로 눈에 눈물이 거렁 거렁 해지는 노래.

.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조선을 강탈하고 식민지화 시킨 것에 대한 일제를 용서치 않으시고 사상적 구심점을 만들기 위하서 강요한 신사참배에 반대하면서 다섯 차례나 검거 되시어 옥고를 치르신 분이 바로 주기철 목사님이시다.

. 주기철 목사님은 1938년부터 1944년 마지막 순교를 할 때까지 모두 5차례 총 5년 4개월간의 투옥생활을 하시다 조국해방을 목전에둔 1944년 4월21일에 순교했습니다.

. 바로 이노래는 복음송가의 옷을 입힌 항일 독립운동의 노래였던 것이다.

‘영문 밖의 길’‘영문’은 예수님이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을 말한다. 마치 영문 밖의 길은 우리나라 국경넘어 만주벌판을 연상케하며 여기서 피흘리고 돌아가신 예수님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는 조선의 젊은 독립투사들을 생각하며 노랫말을 지으신것 같다.

 

일제의 신사참배에 항거, 옥중에서 순교한 주기철 목사

 

 

 

1,출생:(1897~1944)

. 목사는1897년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현재 진해시)에서 태어났다. 당시 웅천은 1595년 임진왜란 때 수많은 왜군이 조선병사들을 무참히 학살했던 비운의 역사현장이다.

.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주목사 일가의 어른 주기효는 민족 수난을 극복하기 위해선 힘을 길러야 한다면서 이곳에 1906년 개통학교를 세웠다.

. 소년 기철은 이 학교에 입학, 투철한 민족정신과 남다른 민족애를 키웠다. 그는 당시 부산에서 우연히 춘원 이광수 애국 강연을 듣게 된다.

. 강연에 감동을 받아 춘원이 교장 대리로 있던 평북 정주의 오산 학교에 진학 그곳에서 민족교육과 함께 신앙교육을 받았다.

. 주기철은 1916년 오산학교를 졸업 그해 4월 선교사들이 세운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입학한지 몇 달도 채 안 돼 지병인 안질로 인하여 학업을 포기하고 낙향한 그는 야학과 청년운동에 정열을 쏟았다.

 

2. 신사참배 거부

. 1936년일제는 신사참배라는 무기로 한국교회의 목을 죄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신사참배는 기독교 교리 상 어긋난다며 신사참배를 반대했다.

. 신사참배에 반대한 성도들을 모두 구속 온갖 고문으로 그들의 박해는 더욱 포악해가자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무기력하게 신사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주목사와 그와 뜻을 같이하는 일부 목회자들은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본군의 총칼 앞에 당당히 맞섰다.

 

일제시대 당시 신사를 참배하던 장면

 

3. 투옥 생활

. 이일로 인해 주목 사는 1938년부터 1944년 마지막 순교를 할 때까지 모두 5차례 총 5년 4개월간의 투옥생활을 하게된다.

. 그는 옥중에서 몽둥이찜질, 채찍과, 쇠못 밟기, 거꾸로 매달아 코에 고춧가루 뿌리기, 발바닥 때리기 등 상상도 할 수 없는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내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변심하지 않았다.

. 7년간의 구속과 석방을 거듭하며 안질, 폐병, 심장병 등이 악화돼 폐인이 되어간다.

. 5번째 구속돼 형무소에 갇히기 직전 자택에서 늙은 노모와 처자, 교인들이 모인 가운데 그는 생애 마지막 설교를 남긴다.

. "우리 주님 날 위해 십자가 고초 당하시고 십자가 지고 돌아가셨는데 나 어찌 죽음이 무섭다고 주님을 모른 체 하리이까. 오직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시퍼렇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에 드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4. 순교

. 그는 투옥된 이후 취조와 고문을 혹심하게 당했다.

. 1944년 4월 21일 숱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은 싸늘한 평양형무소의 구석진 감방에서 49세로 세상을 떠나며 "내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붙잡으소서."하시고 운명하셨다.

 

 

 

영문 밖의 길

 

. 신사참배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때 사상적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서 강요한 거짓 종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교계가 강력하게 신사참배에 반대하지 못했다. 불교 천주교는 제대로 신사참배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았다. 기독교계에서도 신사참배를 용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 그러나 신사참배에 반대한 산정현 교회에서는 많은 성도들이 투옥되었다. 그 중에 한 장로는 많은 매를 맞았지만 이미 많은 매를 맞아 움직이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주목사를 업고 감방으로 들어갔다. 그 날밤 주목사는“장로님, 그 동안 고문을 당하면서 한 줄 한 줄 기도하듯 지은 시입니다"하고 말했다. 후에 이 시는‘다뉴브 강의 잔물결’곡조에 붙여 고난을 극복하는 성가로 불려졌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 목사가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 신앙 때문이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믿음이 그로 하여금 순교할 수 있는 힘을 준 것이다. 이것은 주 목사의 기도문에 잘 나타나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옥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으로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 주 기 철 --

또한‘영문 밖의 길’찬송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 이 찬송 5절은 이렇게 되어 있다.

“십자가의 고개 길이 제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 가신 길이오니 내가 어찌 못 가오리

주님 제자 베드로는 거꾸로도 갔사오니 고생이라 못 가오며 죽음이라 못 가오리.”

이 가사를 묵상하며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십시오.

주님 ! 주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로 우리는 사함을 받고, 감사함으로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영문 밖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아멘

 

 

 

영문 밖의 길

(새찬송가 158장 '서쪽하는 붉은노을')

작 곡 : 이바노비치

작사 : 주기철 목사

노래 : 미상

 

 

서쪽하늘 붉은노을 영문 밖에 비추누나

연약하온 두어깨에 십자가를 생각하니

머리에는 가시관 몸에는 붉은옷

힘없이 걸어가신 영문 밖의 길이라네

 

한발자욱 두발자욱 걸어가신 자욱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간악한 유대관헌 포악한 로마병정

걸음마다 자국마다 가진포악 지셨구나

 

 

눈물없이 못가는 길 피없이 못가는길

영문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 길만은 걸어야 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아픈다리 싸매주고 저는다리 고쳐주사

보지못한 눈을열어 영생길을 보여주니

칠전팔기 할지라도 제십자가 바로지고

골고다의 높은고개 나도가게 하옵소서

 

[ 미켈란젤로 ‘베드로의 순교’]

(예수님처럼 똑바로 십자가에 달릴 자격도 없는 자라고 하여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힌 베드로)

 

십자가의 고개턱이 제아무리 어려워도

주님가신 길이오니 내가어찌 못가오랴

주님제자 베드로는 거꾸로도 갔아오니

고생이랴 못가오며 죽음이라 못가오리